이서해는 초등학교 졸업 앨범은 물론이고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 앨범을 모두 열어보지 못한다 자신만의 판도라 상자처럼 대해버리고 마는 바보같이 미련한 복수귀, 당연하게도 그곳엔 추억할 거리 따윈 존재치 않고 이미 사라져 버린 이의 쓸데없는 증명이 되어버린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자신의 졸업 사진을 보는 것 또한 필히 괴로운 일 나는 그 어느 것에서도 나아가거나 전혀 '졸업'하지 못했는데도......
그럼에도 이따금 그 오래된 초등학교 졸업 앨범만은 남몰래 숨죽여 열어보는 까닭은
역시 그리움이란 제 한 몸 다 바스러져도 온전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라
송태섭과 이서해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분명 두 사람이 닮은 꼴이기 때문에
너무 닮아서, 그들에게서 동일한 것을 빼앗아간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없어서
그렇기에 얼굴을 마주 볼 수 없다
소년이 생전해 있을 적에도 같은 걸 원하기에 동맹 관계는 맺을 수 없던 거야 (ㅋㅋ)
극장판에서 태섭이랑 준섭이가 농구하는 장면 중에 파울! / 아니야! 하는 장면 왠지 좋아해요 자막판 더빙판 둘 다 관람했지만 자막판 쪽 준섭이가 더 단호하고 강단 있게 말한 거 같아서 괜스레 더 좋아지는... 🥹 그리고 일단 귀여움
본래의 이름 뜻과는 무관하나 이서해는 해가 서쪽으로 진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자신은 영원히 지는 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렇구나, 나는 계속 지기만 하겠구나. 지는 쪽이겠구나. 그 말을 누구에게도 꺼내보지 않다가 처음 준섭이에게 얘기한 날 송준섭은 서해를 향해 노을을 선물합니다
"원래 해가 질 때에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거야."
그렇게 말한 남자아이는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추고는 그저 웃기만 하지요 그날 이서해의 시선 안에는 가장 선명한 붉은 자국이 남게 되었습니다 아마 심장의 색깔보다도 더 자신을 살아가게 만드는 삶의 이정표 해가 바다 밑으로 떠내려가는 것을 보며 이리 생각하게 되겠죠 해는 서쪽으로 지는 게 아니라, 바다로 잠기는 거구나. 그럼 됐어. 그럼 괜찮아...... 자신에게 지는 해의 아름다움을 가르쳐 준 바다의 소년 속으로 끝내 사라지게 된다면 그걸로 괜찮다고 아마 오랜 시간을 그리 여기겠지요 그리고 생각합니다
너는 지지 않아, 송준섭.
이름에 바다를 품고 태어났으나 끝내 바다를 헤아릴 수 없는 여자 바다를 보아도 알지 못하고, 그리고 잠길 수도 없는 가련한 소녀... ...
이서해는 바다를 이해할 수 없다
오키나와 가장 서쪽 끝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이서해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도쿄로 이사를 가게 됩니다 그러고는 집안 사정으로 인해 초등학교 3학년 다시 오키나와로 돌아오게 되죠 서해는 오키나와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 애는 겨울이니까요 자신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나 연중 따뜻하고 더운 곳으로 억지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 것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겠지요 심술도 났을 테구요 그러니... ... 이서해는 송준섭을 만나지만 않았더라면 자신이 태어난 고향의 땅도 여름도 모두 좋아하지 않았을 거란 얘기입니다 후에 그 땅을 그리워할 필요도 그 애한테서 건네받은 여름의 흔적이 그리도 짙게 남게 될 일도 없었을 거란 거죠 이서해가 여름을 사랑하는 이유는 오로지 송준섭 하나인 거예요 뺨에 살며시 닿는 뜨거운 열기도 시원하게 부는 바닷가의 허전한 바람도 준섭이가 아니었으면 배우지 못했을 것들이죠...
이서해는 여름을 싫어하는데 하필이면 그 애의 등번호가 7이어서 그 애의 생일이 7월 끝자락에 걸쳐있어서 그래서 결국 가장 좋아하는 숫자도 7이고 가장 좋아하는 계절도 여름이 됐어
이서해의 대부분의 것들이 전부 송준섭의 흔적인 거야
자신의 것을 남겨두지 않은 여자 송준섭이란 남자아이를 만나지만 않았더라면 좋아하는 계절은 여전히 겨울이었을 테고 가장 좋아하는 숫자는 아마 1이었을 거야 나란히 세워진 모양새가 마치 검을 닮았으니까 그리고 언제나 이기고만 싶었을 테니까......
준섭이의 일부는 그 애가 사라졌어도 이서해 안에서 영원히 살아남는 거예요 그러니 더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을 것 같습니다 더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그 사실을...... 나는 너로 이루어져 있는데도
준섭이가 돌아오지 못함에 따라 이서해도 죽었던 것이죠
검을 사랑하게 된 건 차가운 날붙이의 올곧음을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검은 그저 검으로 존재함에도 이서해는 그것에서 어떠한 믿음을 가졌죠 처음 간직하게 된 변하지 않는 무언가였습니다 그러니 더없이 소중했고요 그런 그가 첫 번째, 검이 녹슮을 깨달았고 두 번째, 검의 상실을 겪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후 이서해가 검에 대해 지닌 감정은 어떻게 변화했을까요? 이서해는 여전히 검을 사랑했습니다 다만 그 칼날의 끝이 자신을 향했을 뿐이죠 존중을 담아 검을 쥐던 그 아이의 손에는 더는 동경이 없습니다 검은 자신을 베었고 배신했으며 부러트렸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검을 놓지 못했던 이유는, 여전히 사랑을 입에 담을 수 있던 까닭은 검이 갈라놓은 피투성이의 길만이 자신이 걸어갈 삶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검은 그리움이었으며 과거였고 또한 자신의 일부 혹은 전부기도 했으니까요 검은 자신을 배신했지만 이서해는 검을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자신을 찌르고 베고 또 죽이어도 여전히 살아가게 하는 그 검이 너무나도 미웠지만...... 소녀에게는 단 한 자루의 날붙이만이 호흡을 가다듬는 아가미가 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여전히 송준섭을 처음 만난 그 바닷가 앞에서 시선을 쏘아붙이며 머물다 갑니다
바다를 가를 기세로, 복수의 파도에게...
당연하게도 준섭이는 준섭이만의 고통과 고독이 있었을 겁니다 그걸 어린 나이에 요령껏 감추려 애를 썼을 테고요 주변엔 지켜야 하거나 숨겨야 하는 사람들뿐이었으니 처음 만난 낯선 또래의 여자아이에게 마음을 여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던 일이겠죠 모든 걸 감당해 내기엔 역시 어리고 사실 그 누구도 온전히 혼자서 다 삼켜내리란 쉽지 않으니까요 넘쳐흐르거나 새어 나오는 모든 것들을 누군가 받쳐줄 필요가 있었던 거예요 그게 송준섭에게는 이서해였습니다 특별히 어떤 말을 하고 행동을 취하지는 않아도, 부족하지도 가득하지도 않게 건조한 모래알처럼 그저 포용해 주는 것 그러니 송준섭이 바다라고 한다면 이서해는 바다와 맞닿아 있는 무수히 많은 모래 알갱이들이었던 것입니다
발밑이 꺼지는 불쾌함과 함께 발바닥에 딱 붙는 거슬리는 작은 알갱이들 파도가 들이닥치면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휩쓸리고 적셔지기만 하는 모양새가 딱 송준섭과 이서해의 관계 같아서요 언뜻 무심해 보이는 건조한 모래는 사실상 누구보다도 부드럽고 상냥하죠 송준섭은 그걸 알아요
아이디 의미는 오키나와 서해입니다 ㅎ.ㅎ 오키나와를 줄여서 적었어요 여기서 한 가지 제가 좋아하는 부분은요 서해(西海)를 뜻하는 일본어 발음과 재회(再会)가 같은 소리를 낸다는 점이에요 둘 다 saikai라고 읽거든요 이 사실을 깨닫고 한동안 오래 곱씹어 보았네요
자신의 이름의 의미를 부여해 준 사람은 준섭이지만 앗아간 것 또한 그라는 사실을요 돌아오지 못할 사람을 기다리며 이름에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소리가 담겨 있다는 건 너무 이상하잖아요 물론 서해는 한국 이름이기에 일본어와 연관 짓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이서해의 일본 이름도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기에... 이서해의 일본 이름은 니시모토 토모미거든요 여기서 토모미(知海)란 바다를 아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웃기지요 이서해는 바다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 설령 알 수 있었다고 해도, 그 기회를 영원히 빼앗아간 사람 또한 그걸 건네준 소년입니다
그러니 평생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밖에요 풀리지 않는 의문 돌아오지 못할 재회를 기다리고 끝내 바다를 알아가기 위해서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못해도 어찌 됐건 이서해도 바다를 가지고 태어난 소녀니까요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결국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자신이 아는 가장 큰 바다를요
발렌타인......~ 인기가 많은 편이라(무조건 많을 수밖에 없어 확실하다구) 특히 중학교 올라가고 나서부터는 초콜릿을 적지 않게 받을 것 같은 송준섭 군 근데 받을 때마다 사람 좋게 웃으며 적당히 받아치는데 정작 받은 초콜릿은 거의 절반 이상 이서해의 입속으로 들어감 ㅋㅋㅋ 물론 선물해 준 여학생들 성의를 봐서 몰래 같이 먹는 거지만 들키는 날에는 민심 다 잃고 그 후부터 초콜릿 수가 줄어들었을 것 같음(꼴좋다) 반면 이서해를 이러한 발렌타인데이를 자기 뱃속 채우는 날로 생각합니다 웃기지 준섭이가 내 건 없어? 물으면 넌 많이 받잖아. 라구 함 초콜릿 수가 줄어들 때쯤이면 송준섭이 사서 이서해 줄 것 같다는 게 너무 좋아 ㅋㅋㅋ 순정 바스켓 쾌남 보이라니~
가장 좋아하는 숫자가 있다면?
7이요.
그 이유는?
......
행운의 숫자잖아요.
어두운 바다를 둘이서 함께 거닐던 밤도 있었습니다 유독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던 어린 나날들 그럴 때면 항상 마주치던 장소에서 준섭은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미리 마중을 나와 있었죠 앞이 잘 보이지 않아 가파른 바윗길을 조심스레 거닐고 있자면 소년은 자연스레 손을 내밀어 주었고 소녀는 그런 소년의 손을 붙잡으며 뒤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강한 바닷바람에 이끌려 시선을 옆으로 흘릴 때면 이서해는 매번 짙은 어둠으로 둘러싸인 아득한 암흑의 바다가 자신을 잡아먹으러 올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죠 그럴 때면 마주 잡은 손에는 더욱 힘이 들어갔고 그걸 알았는지 준섭 또한 괜찮다며 언제나 그를 달래주었습니다 변함없이 부드러운 미소로 수많은 밤을 지새우고 반복해도 그때의 이서해가 알지 못했던 것이 있습니다 바다가 원하던 아이는 자신이 아닌 꽉 붙잡은 손의 주인이었다는 것을요
그때 더 강하게 붙들고 있었다면 네가 끌려가지 않았을까 싶은 바보 같은 생각도... 이서해는 여전히 밤바다가 무섭습니다
밤의 바다는 곧 죽음의 무덤
파도는 바다의 울음소리
서해는 보통 무표정이 디폴트이고 부끄러워하거나 설레거나 그런 표정들도 무표정에서 살짝 상기된 느낌... 이 전부인데 송준섭은 그 미세한 차이를 모두 알아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아 ㅋㅋ 다 똑같은 표정인 이서해 보여주면서 이건 기분 좋은 ㅇㅅㅎ. 이건 삐친 ㅇㅅㅎ. 이건 화난 ㅇㅅㅎ. 어쩌구 하면 남들은 다 똑같은 거 아닌가요...? 하는데 송준섭만 알못 상대안함 상태 됨 그 여자애에 대한 미세한 변화도 모두 눈치채는 소년이 좋아...
무슨 색이든 될 수 있다고, 이서해는 송준섭을 보며 그리 여겨요
바다는 어떤 빛깔도 띨 수 있으니까. 너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그리도 자유로우니까.
너는 내 입체, 색깔, 소리, 감촉 그 모든 것이야
잊지 마, 너는 줄곧 지지 않아. 지지 않아 송준섭...
이서해는 그저 송준섭에게 적셔지기만 하는 거야... 언제나 변함없이 같은 자리에서 굳어지고 부서지는 것을 반복하며 파도가 오기를 기다리는 거야
그것은 모두 그 애의 선택 타인에게 일말의 관심도 내비치지 않는 개인주의적인 여자애가 자신이 머물 곳을 굳이 드넓은 바다의 맞은 편으로 정한 것
휩쓸리는 것도, 뭉개지는 것도 말라가는 것도 모두 송준섭에게 맡겨버려 자신을 어떻게 해도 좋다는 애정의 형태, 감히 네 것이 되기를 바란다는 무자비한 헌신... 흔들림 없는 무심한 표정으로 자신의 품 안에 기꺼이 들어오는 여자아이를 거부하는 것도 힘든 일이죠
송준섭은 그게 썩 나쁘지 않았거든
만약 바다에 빠져 사라진 게 준섭이가 아니라 이서해였다면 하는 상상을 한번 해보곤 했는데요, 이런 경우 가장 최악의 엔딩은 송준섭을 따라 같은 배에 올랐으나 여자애 혼자만이 살아돌아오지 못한 경우겠죠
준섭이는 큰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꼈을 거라 생각해요 애초에 자신을 따라나서지만 않았다면 그런 사고도 나지 않았을 테고, 어쩌면 이서해만큼은 살릴 수도 있었다는... 자신만이 돌아왔다는 그러한 죄책감이요 이서해와 마찬가지로 그도 상실에 대해 오랜 시간 괴로워하겠죠 다만 파괴적인 성향이 표출되어 그 누구도 곁에 두지 않고 거부했던 이서해와는 달리 그는 언뜻 '괜찮아' 보일 수는 있어요 왜냐면 그건 그 아이의 특기이자 장점이니까... ...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 애써 웃어 보이지만 속은 엉망진창 제법 고장나 망가져있을 것 같습니다
첫사랑의 죽음은 어느 누구든 감당하기 버거운 것이잖아요
그를 가장 괴롭게 만드는 건 역시 자기만 살아돌아와서 미안하다는 감정이겠네요... 견디기 힘들 때에는 온몸을 눌러 갈기갈기 찢고 마는 고통일 것 같아요 좌절하고, 울부짖고, 발버둥 쳐도 그럼에도 여전히 그 아이는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새어 나오는 미안하다는 작은 소리를 전해줄 수도 구해줄 수도 없어서 그저 얼굴을 묻을 뿐이죠
하지만 우리는 알아요. 사실 그도 이미 알았을 거예요. 자신이 아는 그 여자아이는 그런 말을 할 사람도 아니고, 원망을 쏟아내 모든 잘못을 자신에게로 돌려 탓할 사람도 아니에요.
되려 어께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안겨줄 아이라는 걸 송준섭도 이미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남겨진 자는 언제나 허상의 존재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노릇이죠. 그렇게라도 해야, 자신을 여전히 그 고통 속에 방치해두어야 모든 걸 속죄하고 잊지 않을 수 있다는 착각에 쉽게 빠지곤 하니까. 이서해도 그러했으니까요. 그리고 이서해도 그랬던 것처럼, 고등학교 마지막 경기에서 준섭이도 마찬가지의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구해내지 못한 죄책감 속에서 다정한 모래의 쓸림을 느낄 때, 파도는 그제야 안심할 수 있어요.
가장 충동적이던 시기는 바로 중학교 시절이었습니다 준섭이를 잃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으니까요 자기 파괴적인 성질이 외부로 가장 많이 표출되어 누가 봐도 사납고 위험해 보인다는 인상을 주던 아이였죠 그 누구도 곁으로 다가가지 못했고요
반면 고등학교 시절은 그 충동이 외부보다는 내부를 향할 때였습니다 더는 비명을 지르거나 뛰쳐나가거나 물건을 부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남아있는 상처는 그대로 곪아 자신의 가장 깊은 부분을 파고들던 시기였어요 이서해를 계속 봐왔던 사람이라면 겉으로는 어느 정도 '안정'되어 있던 것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도리어 그의 고요는 가장 큰 위험 신호였기에, 언제 무너지고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위태로운 상태였어요
그는 자신을 죽이길 바랐고 거의 성공을 거머쥘 뻔한 거죠
그걸 말릴 수 있던 사람은, 오래도록 기다렸던 그리운 소년뿐이었고... 기어코 이서해는 또 패배하고 맙니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거라면 이서해는 언제나 그럴 준비가 되어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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